[Book]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스님
잠깐 하는 일이 아니고 오랫동안 그 일을 하려 한다면 그 일을 열심히만 하려고 하지 말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려고 하세요.
쉬지 않고 열심히만 하려고 들면 내 페이스를 잃어버려 결국 그 일을 오래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살면서 고마움을 많이 느낄수록 더 행복해집니다. 세상에 나 혼자 똑 떨어져 있는 ‘외로운 나’가 아니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속의 나’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고마움을 느낄 때 우리는 진리와 더 가까이 있습니다.
내 마음의 렌즈가 ‘지금 무엇이 필요해.’라는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내가 찾는 그 부분만 보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렌즈가 그곳으로만 향하게 되니까요. 이것은 마치 어른 스님이 지나가며 툭 던지는 한마디 말씀을 일반인은 그냥 지나치지만,
깨달음을 간절히 구하던 수행자는 그 안에 숨겨진 큰 가르침을 바로 알아채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바쁘게 사는 내 자신을 더 가만히 들여다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이 이토록 바쁜 까닭은 내가 바쁜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정말로 쉬려고 한다면 그냥 쉬면 되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부탁이 들어와도 거절하면 되는 것이고, 그 거절을 못하겠으면 핸드폰을 꺼놓으면 끝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하고 바쁜 일정 속으로 나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은, 내 마음이 어느 정도는 바쁜 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 큰 기쁨이고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바쁘면 그 바빠하는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마음이 짜증을 내면 짜증내고 있음을 알아채고 화가 나면 화내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알아챔은 바쁨, 짜증, 화에 물들어 있지 않아 아는 순간 바로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는 작용 자체는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런지, 직접 해보세요.
행복의 지름길.
첫째,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일을 멈추십시오.
둘째, 밖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내 마음 안에서 찾으십시오.
셋째, 지금 이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느끼십시오.
싫어하는 사람을 내 가슴속에 넣어두고 다닐 만큼 그 사람이 가치가 있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가족, 나를 응원하는 친구만 마음에 넣어두십시오. 싫어하는 사람 넣어두고 다니면 마음병만 얻습니다.
길을 지나가던 상대가 나를 보고 스님이라고 정성스레 합장을 하니 나도 정성스레 합장인사를 합니다.
상대가 나를 보고 목례를 하니 나도 부지불식간에 목례를 합니다.
나는 상대의 거울입니다. 상대는 또 나의 거울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이는,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 해달라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 안에도 똑같은 결점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그의 결점이 딱 보이는 건, 그리고 그의 결점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는 건, 내 안에도 똑같은 결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생긴 문제를 풀 때, 왜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까, 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까, 이런 마음에서 출발하면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닌 나의 요구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에게는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주는가?
둘째,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가?
이 두 가지 질문이 사람들의 행복의 열쇠라고 합니다.
항상 옳은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 옳은 이야기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을 위해서는 자신의 깊고, 연약한 부분까지 다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망가지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해요. 내 스스로가 남들에 비해 대단하다고 느끼면 절대로 망가지지 못해요.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소탈하게, 가끔은 망가질 수도 있어야 나와 사람들 사이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가까워집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면 본인이 불행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자라온 성장 배경이나 지금 처한 상황이 불행하니 나오는 말도 아프고 가시 돋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만나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니 참 불쌍타.” 생각하고 넘어가십시오.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십시오. 그 자리에서 말하면 상대방이 ‘아차!’ 합니다.
서운함을 느꼈던 시간과 그 서운함을 표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강은 깊고 커집니다.
바로 이야기하지 못하면 감정이 쌓이게 되고,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서로를 아프게 만듭니다.
누군가를 험담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아주 따뜻한 말을 건넵니다.
그때 너무나 미안해져요. 복수는 이렇게 멋있게 하는 거예요. 사랑으로.
젊은 그대여, 잠깐의 뒤쳐짐에 열등감으로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삶은 당신 친구들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 벌이는 장기 레이스입니다.
친구들을 무조건 앞지르려고만 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나만의 아름다운 색깔과 열정을 찾으세요.
스펙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다 보니 스펙이 하나둘씩 쌓이도록 하세요.
과정의 즐거움이 빠지고 결과만 얻으려 하면 그게 바로 고통입니다. 과정을 즐기십시오.
너무 빼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불러줄 때가 적기입니다. 남들은 지금 그대로 괜찮다고 하는데도 자신이 끝끝내 준비를 더 해야겠다고 우겨 시간을 끌다 시기를 놓치면 준비가 다 됐을 때는 막상 아무도 부르지 않습니다. 너무 빼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이번 주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하나 세우세요. 지금 바로 세우세요.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왜냐하면 우주가 곧 우리 마음이기 때문에 내가 품은 마음속 ‘한 생각’에서 모든 일이 시작됩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자기 팀 구성원을 모두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사람으로만 채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야 자신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 있는 말에는 채찍질을 하지 않습니다. 달리는 말에만 채찍질을 합니다. 윗사람이 혼을 낼 때, 내가 지금 잘하고 또 잘 가고 있으니까 더 잘되라고 하는 경책으로 생각하고 감사히 받아들이세요. 그렇게 하면 내가 더 크게 됩니다.
우리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라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그 일을 진짜로 어렵게 만듭니다. 그냥 하십시오.
어떤 생각을 하는가가 말을 만들고, 어떤 말을 하는가가 행동이 되며, 반복된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지면 그게 바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어떤 생각을 일으키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나는 그 정도는 다 안다.’에서 시작하므로 새로운 것이 들어갈 틈이 없는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나는 아직 모른다.’라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니 더 큰 지혜가 쌓입니다.
우리는 친구가 내 힘든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그 친구가 내 고민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줄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그것이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다가와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한다면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진심으로 들어주세요.
인생은 짜장면과도 같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짜장면 먹는 모습을 보면 참 맛있어 보이는데 막상 시켜서 먹어보면 맛이 그저 그래요.
지금 내 삶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해도 막상 그 삶을 살아보면 그 안에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뇌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생기면 ‘남이 먹는 짜장면이다!’라고 생각하세요.
무언가를 배우는 데 가장 큰 장애는 모르는데 아는 체하는 것입니다.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배우면 되는데 아는 체하니까 계속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연극해야 합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솔직해지면 바로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자꾸 설득하고 싶은 것은 사실 나 자신이 완벽하게 설득당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내가 남자라는 것을 믿으라고 떠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하니까요.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비록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모조리 깨뜨려놓을지라도.
사랑은 그대의 성숙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내 마음에 맞게 바꾸려 하지 말고 오히려 바꾸려는 내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훨씬 더 빠릅니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슨 수로 다른 사람을 내 방식대로 바꾸시겠습니까?
무소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닌 가지고 있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아니다 싶을 때 다 버리고 떠날 수 있어야 진짜 자유인입니다.
반대로, 없어서 갈증을 느끼는데도 무소유라는 이름으로 참고 사는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이 있지요. 어떤 사람이 완벽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분명,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긴 하되 ‘열심히 하는 기분’에 빠지지 마세요. 일과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하는 기분’에 도취되면 폼만 살고 실속은 없습니다. 그래서 큰스님은 늘, 공부할 때는 거문고 줄 고르듯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잔꾀 부리지 않고 성심을 다해 일하는 것, 가끔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당신의 성실성은 빛이 나게 마련이에요.
뭐든 첫 단추를 잘 끼워야지 “일단 이렇게 대강 해놓고 나중에 바꾸자.”라고 하면 실제로 생각처럼 잘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중엔 지금처럼 의욕이 넘치지 않을 수도 있고 지금과 달리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그러므로 더 귀찮아질 수도 있고 처음 상태에 그냥 익숙해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 아직도 그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합니까? 그것은 아마도 그 사람과 친해지는 것을 계기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정말 친해지기 위해서는 얻고자 하는 마음부터 먼저 비우세요. 인간관계 속의 인위적인 노력은 말하지 않아도 금방 눈에 띄어요.
순수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가면 오히려 쉽게 더 친해집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지금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자세를 해보십시오. 30분만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어보십시오. 가장 편한 자세가 가장 불편한 자세로 변합니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 편하고 좋은 것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