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오늘부터 가벼워지는 삶



기시미 이치로

  • 앞으로 40년이나 똑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고통스럽다며 자살을 시도한 젊은이가 있었다.

    1년 후의 일조차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요즘 세상에 앞으로 40년이나 지금과 똑같은 생활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니, 나는 그 점에 적잖이 놀랐다.

  • 아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삶이 고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터무니없이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들러는 그렇더라도, 혹은 실제로 비틀거리는 일이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 춤출 수 있다고 말한다.

  • 단 한 번도 불운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음에도 마치 자신에게만 불길한 신이 붙어 있는 양 행동하거나,

    폭풍우 치는 날 천둥과 번개가 자신만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곤경에 처했을 때 불행이 항상 자신만 따라다닌다고 느낀다.

    이들이 우울해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터무니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시선은 모든 것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늘 비관적이다. 인생을 어둡게 보니 무슨 일을 해도 항상 잘 풀리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타인의 인생마저 힘들게 하는 불운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하지만 그 배후에 있는 것이 바로 허영심이다.

    하는 일마다 안 된다며 불운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모든 것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터무니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사람을 상징한다.

  • 고난을 찾아 고난을 늘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그 무거운 짐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하려는 게 목적이다.

    그런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어떤 일에 착수하여 성공하면, 자신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핸디캡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성공은 한층 더 큰 것이 된다. 그 이점을 포기 못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오히려 늘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어느 누구도 악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은 누구든 선을 원한다는 말이다.

    선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의미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악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은 누구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원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지만 선을 추구하려는 행위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 행복 따위가 있겠냐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통속적인 의미의 행복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선을 원하더라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선이라고 판단했던 것이 사실은 선이 아니었던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사람이 불행하다면 불행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판단, 즉 ‘선=행복’이기 위한 수단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 격정, 격노, 정열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passion’은 ‘파괴하다patior’라는 의미의 프랑스어가 어원이다.

    passion은 수동적이어서 대부분이 그러한 감정에 저항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용의 심리학’이라 일컫는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사람은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한다.

    감정은 의지에 따라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 ‘화’는 상대에게 요구를 전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 돌은 늘 아래 방향으로만 떨어지지만 인간은 행동할 때 단 하나의 행동만 선택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행동은 모두 목표에 의해 설정된다. 사람이 살아가고 행위하고 자신의 입장을 내보이는 방법은 반드시 목표 설정과 이어져 있다.

    일정한 목표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아무런 생각에도 착수할 수 없다. 어떠한 행동을 일으키고자 할 때는 목적이 앞선다.

    그리고 이 목적은 자유의지로 선택된다. 욕구나 감정이 사람을 떠미는 게 아니라 반드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가는 것이다.

  • 만일 사람이 무엇이 선인지를 정말 알고 있다면 감정에 지배다하는 일은 절대 없으므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감정에 지배당하는 일이 선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꼭 해야만 했던 일을 하지 못했다면, 그 사실을 알고도 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꼭 해야만 했던 일이 ‘선’임을 정말로 몰랐다는 게 된다.

  •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자신이나 세계의 현상과 이상에 관한 신념 체계를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이중 목표를 설정하여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 이상과 관련이 있다.

    이 자기 이상은 그 자체로 목표가 되고, 또한 이것은 상위 목표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자신을 다른 ‘나’로 바꿀 수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떠한 습관이나 성격 등이 있더라도 죽을 때까지 나는 나이지 다른 ‘나’로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라면 바꿀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확립한 이후에는 라이프스타일을 통해서만 세계를 본다.

    또한 이렇게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세계를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사람은 이른바 색안경을 통해 이 세계를 보고 있는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의미의 라이프스타일이 겉으로 나타난 형태가 바로 ‘성격’이다.

  • 타인을 적이라 간주하고 세계를 적대적으로 보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해

    더욱더 자신의 인식방식과 행동방식을 고정화한다.

  • 성격은 결단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천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림자처럼 항상 사람을 따라다니며, 어떤 상황에서든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도 통일된 인격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는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신경증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고찰할 때는 항상 신경증의 상대가 있어야 한다. 환자의 상태로 인해 곤란해지는 사람은 누구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병이 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일 수도 있지만 통상 이 상대는 가족의 일원이나 이성일 수도 있다. 신경증에는 항상 이렇듯 숨겨진 비난이 있다.

    환자는 마치 자신의 권리, 즉 주목의 중심에 설 권리를 빼앗긴 것처럼 느껴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고 비난하고 싶어 한다.

  • 심리치료로 할 수 있는 것은 증상은 내버려둔 채로 오히려 자신감을 갖도록 돕는 일이다.

    아들러는 “나는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만 용기를 갖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용기는 대인관계와 마주할 용기, 대인관계에 들어갈 용기다.

  •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의 고민이다.

  • 한 아이가 월요일 아침부터 배가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고 한다. 이 아이의 복통과 두통은 절대 꾀병이 아니다. 진짜로 배가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이런 증상을 호소하면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이때 아이는 생각한다.

    오늘은 정말 학교에 가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배가 아파서 갈 수 없을 뿐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는 그냥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증상이 없으면 부모도 교사도 학교에 보내려고 하니까 증상이 필요한 것뿐이다.

  • 큰 재해나 사고를 당한 사람이 불안을 호소할 때, 실은 이 사람에게 원래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말인즉슨, 평소에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큰 재해나 사고를 당한 것에 대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이유가 생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 인생의 과제에 몰두할 때 누구에게나 실패할 확률은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성공이 보장되는 일에만 도전한다. 만일 실패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 않도록, 이를테면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떨어질 것에 대비하여 미리 아래에 그물을 쳐두는 것과 같은 일이다. 증상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다.

    고민도 마찬가지다. 고민하는 동안에는 결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고민하는 것이다. 즉, ‘고민함으로써 과제에 직면하는 것’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분명 요즘 세상은 언제 재해나 사고, 사건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고의 위협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광장공포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세상에 이러한 위협보다 필요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봄으로써 ‘익숙한 상황’에 머무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은 인간의 본능적인 마음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마련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너무 과장한 목표를 설정한 나머지 거짓말을 일삼거나 남을 깎아내리면서 그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처럼 허울뿐인 명성에 집중하게 됩니다.

  • 변방에서 우월성을 추구하는 것은 범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인생에 닥친 곤경을 건설적인 노력으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위해를 가하는 등의 치사한 수단으로 타인의 주목을 끌어 우월감을 얻으려 한다.

  • 허영심이 있는 사람은 늘 적의를 품고 있어 가는 곳마다 조소와 비난을 준비하여 타인을 철저히 지치게 만든다.

    또한 독선적이며 어떤 사람이든 비판한다. 그들은 공격이야말로 최대의 방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개인적인 우월성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나타내는 경멸이나 모멸을 가치 저감 경향이라고 부른다.

    그 경향은 허영심이 있는 사람의 공격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가치와 중요성이다.

    타인을 몰락시킴으로써 우월감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는 우수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의 우수함을 강조하여 우수한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하는 것이다.

  •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개인적인 힘과 우월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강한 열등감을 갖고 있다.

    정말로 우수한 사람은 굳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할 필요도 없다.

    차별이나 괴롭힘도 가치 저감 경향에서 일어난다.

    차별이나 괴롭힘은 타인의 가치를 폄하함으로써 자신의 우수함을 과시하려는 강한 열등감에서 생겨난다.

    보통사람으로 있어서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타인을 차별하거나 괴롭히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 아이 입장에서도 부모가 현실의 자신이 아닌 이상의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괴로워진다.

그래서 아이는 처음에는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특별히 우수해지려고 하지만,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특별히 나빠지려고 한다.

  • 어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아이는 불신감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눈을 피하는 것은 반드시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간적으로라도 자신을 타인과 결부시키지 않으려 함을 나타낸다.

    아이를 불렀을 때 얼마나 가까운 거리까지 오느냐에 따라서도 아이가 타인을 어떻게 보는지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서, 먼저 상황을 살핀다. 그런 다음 필요하다면 가까이 가기도 하고, 또는 멀어지기도 한다.

  • ‘만일 나였더라면’하고 자신의 견해를 상대에게 적용하는 것으로는 상대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직접 상대의 입장에 서 봐야 한다. 이러한 의미의 공감은 쉽지 않겠지만 이것이 공동체 감각의 기초가 된다.

  • 타인에게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과 존경이다. 나를 사랑하라, 나를 존경하라고 누군가를 강제할 수는 없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 밤새 일해도 에너지가 넘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만 야근을 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음을 느낍니다.

    언제까지나 젊은 채로 함께하리라 믿었던 부모님의 얼굴에 어느새 나이의 그늘이 비칠 때쯤, 우리도 새삼 나이 드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 신체나 지력의 쇠퇴가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노화 자체는 그리 문제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노화와 더불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일만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에서 멀어지면 어느새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나’하는 생각에 어린 아이의 사소한 말까지 다 받아주는 온화한 노인이 되거나 작은 일에도 매섭게 덤벼드는 신랄한 비평가가 된다.

    인간의 가치에 대해 항상 ‘뭔가를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와 같은 생산성으로 측정해온 사람이나, 생산적인 것만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은 노쇠하여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면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특히, 몸의 기능이 예전 같지 않거나 어제의 일을 떠올리는 게 버거워질 때면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 병을 받아들인다는 건 지금 몸이 보내는 신호를 얼마만큼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도 그것에 대한 반응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귀를 닫아버린다. 건강한 사람이란 몸의 이상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고 그것에 따르는 것이 바로 병을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아가는 것이다.

  • 여러 가지 나쁜 것 가운데 죽음이 가장 두렵다고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어떠한 문제를 안고 심리치료를 하러 온 사람에게 나는 “그것은 당신 탓이 아니었다”와 같은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심리치료를 하러 온 사람들의 마음은 당장 편해질지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 저승이란 좋은 곳 같다. 간 이상에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 무슨 일을 하던 남의 의견을 먼저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점심 메뉴를 정하는 일조차 상대방은 어떤지 살피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런 사람들은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남의 생각을 따지고 분위기를 읽기 전에 나 자신의 생각은 어떤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내가 되고 싶은지를 알면 앞으로의 내 모습이 빚어집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답이 보일 것입니다.

  • 나는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만 용기를 갖는다

  • 자신의 단점이라 믿어왔던 것이 있다면 장점으로 다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장점과 단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단점으로 볼 수 있는 자질은 그대로 장점으로 살릴 수 있다. 사람의 단점이 튀어나온 각과 같은 것이라면 그 단점을 없앨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분명 각이 없는 두루뭉술한 사람이 되든지, 각을 깎은 만큼 스케일이 작은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니 단점을 교정하면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없다.

  • 어릴 적부터 부모나 교사에게 칭찬을 받고 자란 사람은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칭찬받지 못하면 하다못해 혼나는 것으로라도 주목받으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정을 받으면 기뻐한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설령 타인의 기대를 채웠다고 해도 그것은 타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인정 욕구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러한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적절한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 만약 자신이 한 일에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해 만족할 수 없다면, 이는 인정 욕구와 다를 바 없다.

    공헌감을 가지면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자신이 한 일을 누군가가 알아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칭찬하고 인정하는 것은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이며, 그것은 종적인 대인관계에서 가능한 일이다.

  • 하지만 그 학생에게 중요한 것은 배움이지 교수로부터 우수한 학생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학생이 교수로부터 인정받는 데만 신경 쓰면 언제까지나 제대로 배울 수 없게 된다.

  • 열등감은 실제로 열등한 것이 아니라,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건전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향한 자극”이 되어준다.

    그것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겨나는 열등감이 아니다.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자신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더 노력하면 그만이다.

  • 남에게 자신이 별로 근면하게 보이지 않게 하려는 데는 목적이 있다. 실패했을 때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탓이라고 둘러댈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떤 목표를 이뤄낼 수 없다면, 다만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생각만큼의 성과를 낼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고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만약 더 열심히 했더라면 잘할 수 있었을 테데’라는 가능성을 남긴다.

  • 실패로 인해 용기가 꺾이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실패 이후에 잃은 것들이나 차질을 빚은 계획을 가능한 한 원래대로 되돌리고,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패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같은 일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게 된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면 사죄하는 것도 실패의 책임을 지고 개선하려는 것이다.

  • 아들러는 과제를 달성하기 곤란할 때 거기에서 도망치려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전부인가, 제로인가”라는 말로 설명했다.

    어떤 일에 도전해 비록 절반밖에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제로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

  • 아이는 일부러 어른이 믿지 못하게끔 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른의 주목을 끌려는 것이다.

아이는 어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정이나 학교라는 공동체에 소속되려고 한다.

하지만 건전한 행동을 해도 인정받지 못해 소속감을 갖지 못하면, 다음번에는 부적절한 말과 행동으로 어른의 주목을 끌려고 한다.

  • 신뢰란 믿을 근거가 없을 때조차도 일부러 믿는 것이다. 자신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계속해서 배반하기란 어렵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면 아이는 이 세계와 타인에 대한 관점이 바뀐다.

  • 젊은 사람이 가여운 이유는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등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방식들로 부모나 어른에게 반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 남의 눈을 신경 쓰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남의 눈 따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듣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의식하다 보면 오히려 더 남의 눈을 신경 쓰게 된다.

  • 남 앞에서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도, 남에게 평가받을 두려움에 긴장하여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말을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긴장을 핑계로 삼으려는 것이다.

  •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남의 눈에 신경 쓰느라 자신을 실제 이상으로 좋게 보일 필요는 없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 “내가 나를 위해 나의 인생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가겠는가”라는 유대교의 가르침이 있다.

    어떤 일을 하건 자신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자신을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나머지 예닐곱 명은 그때그때 태도를 바꾸는 사람이다.

    한편 나머지 두 명 정도는 무엇을 해도 받아줄 것이다. 그 두 사람과 사귀면 된다.

    나머지 여덟 사람, 특히 무엇을 하든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한 사람 때문에 마음을 번잡하게 할 필요는 없다.

  • 실제로 어떤가보다 어떻게 생각될 것인가에 신경을 쓰면 현실과의 접점을 쉽게 잃는다.

  •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만 신경 써서 남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불신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또한 상용할 수 없는 생각을 동시에 받아들이거나, 서로 적대하는 사람 양쪽에 모두 충성을 맹세하다가 발각되기도 한다.

  • “넌 정말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일단 공부만 하기 시작하면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들은 아이는 절대 공부하지 않는다.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 안에서 살아가는 한, 그 가능성 안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로 살아갈 수 있다.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치르고 나쁜 성적을 받아 ‘공부 못하는 아이’로 전락하기는 싫은 것이다.

  • 내일을 오늘의 연장이라 여기고 생을 늘려가는 것만으로는, 지금 여기의 생을 완전한 것으로 할 수 없다.

내일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흡족하게 보내야 한다. 만일 하루하루를, 나아가 한 순간 한 순간을 성심껏 소중히 살아간다면

아무렇지 않은 순간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여행이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즐기는 것이듯 인생 또한 그렇게 과정을 즐길 수 있다.

  • ‘진지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아들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끈임없이 활달한 성격에 과시나 강조를 통해 인생의 밝은 면을 손에 넣으려 하고, 기쁨과 활달함으로 인생에 필요한 기초를 다지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 안에 끊임없이 아이 같은 활달한 태도를 내보이고 아이같은 방식 속에 마음이 들떠서 과제를 회피하지 않고 놀이처럼 맞서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다”

    “이런 성격은 인생의 진지함에서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없다. 항상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곤경을 너무 간단하게 극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흔히 그렇듯이, 대개는 이 인식에 따라 곤란한 과제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스스로 곤란한 화제를 회피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들이 정말로 곤란한 과제에 몰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 컴퓨터로 작성한 수천 장의 원고를 조작 실수로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30초 동안 잃어버린 원고 생각에 멍하니 있었다.

    그러나 30초 후 다시 처음부터 원고를 새로 썼다. 아무리 고민해봤자 잃어버린 원고가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잃은 것을 포기할 용기를 갖지 않으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심리학은 하룻밤 사이에 배울 수 있는 과학이 아니라, 배우면서 실천해야만 한다.

  • 나는 항상 친구의 수가 많음을 경쟁하지 않았고, 한 반에 여럿 있던 그룹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지냈다.

    친구의 수를 늘리고 싶다면 그저 모두에게 선한 얼굴을 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