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짧은 이야기, 긴 생각

이어령
나를 찾는 숨바꼭질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면
손톱을 보게 됩니다.
글을 쓰다 연필이 부러지면
연필을 보게 됩니다.
다칠 때, 넘어질 때 나는 비로소 나를 봅니다.
나를 찾는 숨바꼭질.
보통 때는 모르다가
실패를 하고 이마를 부딪치면 비로소
나는 숨어 있던 나를 찾아내지요.
서 있는 것보다는
앉아 있는 것이 편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누워 있는 것이 편합니다.
편한 삶을 거부하세요.
죽음이란 영원히 누워 있는 것.
살아 있다면 일어서세요.
이마를 부딪치면서
나를 찾는 술래가 되세요.
젊은 세대들은 ‘감동했다’고 말하지 않고 ‘감동 먹었다’고 말합니다.
먹을거리가 없어서 배가 고팠었는데 오늘의 한국인들은 감동거리가 없어서 마음이 고픈가 봅니다.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아이들은 늘 불안해하지요.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을 멈추지 마라, 우직한 꿈을 버리지 마라.
끝없는 지적 호기심, 그리고 비전을 찾아 계산하지 않고 어려운 길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의 열정.
학교에서 배운 어떤 지식이나 이론보다도 이 한마디가 사회로 나오는 졸업생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임새가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빛의 속도로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세상. 하지만 우리는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가족끼리 말하는 시간은 분 단위로 줄어들고 있어요.
제각기 방 안에서 메일을 보내고 휴대전화를 걸지요.
통신 위성이 지구 구석구석을 이어주는데 바로 옆 아파트의 독거노인의 죽음은 우편물이 문 앞에 쌓여야만 비로소 아는 세상입니다.
‘함께 그러나 따로’
이 모순어 속에 추운 문명의 겨울 속에서도 사이좋게 살아갈 여러분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방황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방황한다는 것은 무언인가 찾고 있다는 것. 돌아갈 집이 없음을 걱정하세요.
같은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서남북으로 뛰면 네 사람이 1등을 하고, 360도 방향으로 각자 달리면 360명이 모두 1등을 하지요.
“자네는 내게 가르침을 달라고 하고 자기 이야기만 계속하고 있으니 내 말이 들어갈 곳이 없지 않나.
자네 잔이 가득인데 내가 말한들, 내 말이 자네 마음속에 들어가겠는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물을 할 때에는 부자가 함께 웃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을 할 때는 부자가 함께 운다.
내가 하는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고 머리를 비우고 살 수도 있어요. 남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기에 이런 순간이 길어지면 우리들은 멈칫하고 맙니다. 밀려드는 공허함과 허무함을 씻기 어렵지요.
상황에 떠밀려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삶보다는, 내가 나를 이끌고 가는 의식적인 삶을 만들어 나가길 바라기 때문이겠지요.
‘책임’이라는 말을 영어로 Responsibility라고 하지요. ‘대답하다’는 뜻의 Response와 ‘능력’이라는 뜻의 Ability가 결합된 말이지요.
결국 내 인생에 책임을 지려면 나는 내 인생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오늘 검색을 통해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고 해서, 과연 나 자신이 풍요로워진 걸까요? 인터넷 검색에서 얻은 지식은 남의 생각입니다.
나의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보와 정보를 결합하고 꿰어낼 수 있는 지혜를 키워야 하지요. 그 힘은 바로 사색의 시간을 통해 키울 수 있습니다.
‘미인 투표’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1,000명의 여성을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면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으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 투표에는 상품이 걸려 있었어요. 투표자들 전체의 취향에 가장 가까운 선택을 한 사람에게 상품이 주어지는 거에요.
이럴 경우, 투표자들은 누구를 뽑을까요? 자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여성을 뽑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뽑을 것 같은 여성을 선택하게 되겠죠.
내 선택이 아니라 남들이 선택할 것 같은 것을 우선 고려하는 거에요.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블로그 같은 인터넷의 개인 미디어 시대에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더 신경을 쓰고 삽니다. 개구리 해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의사가 되라고 부추기고, 공부만 잘하면 무조건 S대 법대에 가라고 하잖아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칠판 앞에만 앉혀 두고, 노래 잘하는 사람을 도서관에만 앉혀 둔다고 그 사람 인생이 술술 풀리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의사가 되고 판사가 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좋다니까 우르르 몰려가서 스스로 출세했다고, 존경받는다고 위로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