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를 감명깊게 읽어 출간하자마자 읽었던 책입니다. ‘책은 도끼다’를 읽은 이후 책에 밑줄을 긋기 시작해 해당 책은 정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읽고 정리해두겠습니다.

  • 베어버리자니 풀 아닌 게 없지만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더라.

  • someday.

    “I’ll do it some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hursday, Friday, Saturday, Sunday.

    See? There is no Someday.

  • 다독多讀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自害다. 압력이 너무 높아도 용수철은 탄력을 잃는다.

    = 주체적인 사색 없이 모든 걸 책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판단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싶어 한다.

  •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이다.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다. 이게 지식과 지혜의 차이다.

  •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나만의 고유한 사색에 의해 어떤 진리에 도달했다면, 비록 그 내용이 앞서 다른 책에 기재되었을지라도 타인의 사상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산의 정상일지라도 오르는 사람의 개성과 방법에 의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사색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단순히 산 정상에 도달했다는 물리적 결과만이 아니라 정상에 도달하는 동안 겪었던 체험도 포함되어 있다.

  •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사용했다.’

    사실 그 반대의 경우가 많죠.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책 한 권으로 벌려놓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후배들을 가끔 봐요. 자기는 특별히 할 얘기가 없어도 20분 동안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자랑이에요. 이거 큰일이에요. 남의 소중한 20분을 왜 낭비합니까.

  • 눈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조용한 일」

  •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시를 제대로 읽어 보려는 사람은 어떻든 시 앞에서 일단 겸허하고 공경스러워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야 내 마음의 문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야 한 편의 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목소리와 빛깔과 냄새들이 나에게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친구의 성을 빼앗기에 여념이 없던 아이들도 해질 무렵 어머니가 부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 모래성을 짓밟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 11월의 저물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 개

    막걸리와 고추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 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박노해, 「경운기를 보내며」

  • 육체노동이 정신적인 삶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육체노동을 할 때만이 지적이고 영적인 삶이 가능하다.

  • 보고 듣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서두르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은 떠나라.

  • 나는 이 세상에 왔던 것에 만족합니다. 내가 무수한 고난을 겪었음에, 중대한 실수들을 저질렀음에, 만족합니다.

  • 순간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이 완벽해야 한다.

    부족함 없어야 하고 바라는 게 없어야 한다. 모든 희망의 극복이 필요하다.

  • 찬란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 순간을 찬란하게 만든다.

  • 절세 미녀의 똥. 자상한 아버지의 폭력. 7성급 호텔의 쓰레기 냄새. 배은망덕한 자의 의리. 당신은 이 문장들에 불편함을 느낀다.

  • 어른이 되어서 거리를 두고 볼 때에야 방황이 방황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렇게 거리를 둘 때에만 방황의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미래의 어느 날 지나간 젊음을 향해 어떤 시선을 던지게 될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확신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이미 경험한 어른들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옹호한다.

  •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 친구여, 부득이 그대가 청춘을 필요로 할 때란,

    전쟁터에서 적들이 그대에게 밀어닥칠 때,

    사랑스럽기 한량없는 소녀들이 전력을 다하여 그대 목을 끌어안고 매달릴 때,

    빨리 달리기 경주의 월계관이 멀리 도달하기 어려운 골인 지점에서 눈짓하고 있을 때,

    회오리바람처럼 돌아가는 격렬한 춤을 춘 다음 주연을 베풀어 술 마시며 밤들을 지새울 때올시다.

    그러나 대담하고도 우아하게 이미 익숙해 있는 현악을 연주하며,

    자기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하여 즐겁게 방황하며 소요해가는 것이,

    노인장, 당신네들의 의무올시다.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 이성이 있고 올바른 생각만 있으면,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연설은 저절로 나오는 법일세.

    자네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진지하다면, 말마디를 꾸미려고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 경기가 끝난 밤 열한 시쯤 여고생 세 명이 사거리 귀퉁이의 편의점 앞에서 응원봉을 들고 콜라를 마시면서 너무나도 처량하게 작은 목소리로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엔 축구를 참 좋아하는 학생들인가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닌 거죠. 축구를 좋아한 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이제 다시 입시의 터널로 들어가야 했던 게 슬펐던 거에요.

    월드컵은 20일간의 해방구였죠. 축제였습니다. 그때는 엄마 아빠가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안 했어요.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다 같이 TV를 봤고요. 축제는 일상에 그런 해방구 역할을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