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데미안



헤르만 헤세

  • 내 의지가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즉시 기회를 포착한 거지

  • 내가 무엇이 되건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특별하고 별로 곱지 못한 식으로, 술집에 앉아 의기양양하게 굴면서 나는 세상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 나름의 저항의 형식이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망가뜨렸고, 이따금씩은 내 일을 대략 이렇게 보았다. 세상이 나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나 같은 사람들에게 줄 좀더 나은 자리, 좀더 높은 과제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이제 나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망가지는 거라고, 세상이 손해를 보겠지 뭐

  • 술집 출입이야말로 뭔가 정말 속물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래, 하룻밤, 불타는 횃불을 들고, 제대로 된 멋진 도취와 비틀거림으로! 그거야 좋지. 하지만 그렇게 홀짝홀짝 한 잔 또 한 잔을 마셔대는 것은 아마 진짜가 아닐걸? 이를테면 저녁이면 저녁마다 단골 술집 식탁에 앉아 있는 파우스트를 상상할 수 있겠어?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시스.>

  • 당시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서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 세계를 그냥 자기 속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느냐, 이게 큰 차이지. 미친 사람이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생각을 내놓을 수 있고, 헤른후트파 학교의 신앙심 깊은 조그만 학생이 영지(靈知)파나 조로아스터에서 나타나는 심오한 신화적 연관을 창조적으로 숙고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들은 세계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몰라. 한 그루 나무거나 돌인 거지, 기껏해야 동물이고. 그 사실을 모르는 한에서는 말야. 그러나 이런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지. 자네는 그렇다고 모두를, 저기 거리를 걸어다니는 두 발 달린 것 모두를, 그들이 똑바로 걷고 새끼를 아홉 달 뱃속에 품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라고 여기지는 않겠지?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고기거나 양, 버러지거나 거머리인 줄은 아시겠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개미들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벌들인지! 자아, 그들 하나하나 속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지. 그러나 각자가 그 가능성들을 예감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심지어 그것들을 의식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그 가능성들은 자기 것이 되는 거라네!

  •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더러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지. 그런 나무람을 그만두어야 하네. 불을 들여다보게, 구름을 바라보게.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질랑 말도록.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님 혹은 그 어떤 하느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야. 그런 물음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 그런 물음들 때문에 인도(人道)로 올라서는 것이며 화석이 되어가는 거지.

  •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 난 영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내 꿈속에서 살고 있어. 그걸 네가 감지했구나. 다른 사람들도 꿈속에서 살아. 그러나 자기 자신의 꿈속이 아니야. 그게 차이지.

  • 그 사이 나를 내면적으로 키워준 것은 학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분 좋았던 것은, 나 자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감이었다. 나 자신의 꿈, 생각, 예감에 대한 커가는 신뢰였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한 늘어나는 앎이었다.

  •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 내 고향 도시의 관리들, 그 늙고 위엄 있는 신사들이 기억났다. 그네들은 축복받은 천국의 기념품처럼 그들이 술집에서 허비한 대학 시절의 추억에 매달렸으며 그들의 학창 시절의 사라져버린 <자유>를 예찬했다. 여느 때 시인이나 다른 낭만주의자들이 유년에 바치는 숭배와도 같이. 어디서나 똑같았다! 어디서나 그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속 그 어딘가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았다.

  •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 당신이 믿지 않는 소망들에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아요. 그런 소망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완전히 올바르게 소망하든지요. 한번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성취를 확신하도록 그렇게 소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성취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소망하고, 다시 후회하고 그러면서 두렵지요. 그 모든 것은 극복되어야만 합니다.

  •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